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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세상 가장 밑바닥의 슬픔, 고통, 좌절을 이겨낸 김종서 박사 이야기 7 ;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날려 버린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될 기회 


   김종서 박사가 왜 ‘국민기업경제(국민공동소유기업경제ㆍ국민공동소유토지경제)’라는 경제이론을 창조하게 되었는지,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각종 국가 제도를 개혁하는 방안을 연구하게 되었는지, 은퇴하여 편히 여생을 보내야 할 나이에 왜 국민기업경제 실시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정치를 시작하려고 하는지, 김종서 박사가 대통령이 된다면 김종서 박사가 대한민국을 지배해온 대한민국 상위 1% 계층(기득권층)에 맞서 대한민국을 무주택자 없는 세상, 세금 없는 세상, 국채 발행 없는 세상, 생활비ㆍ교육비 걱정 없는 세상, 노후 걱정 없는 세상, 연금 없이도 더 잘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능력과 열정을 가진 사람인지 확인해 보시려면 김종서 박사가 어떠한 삶을 살아온 사람인지 알아야 할 것입니다.

   김종서 박사가 살아온 이야기, 슬프고 아픈 이야기, 인간 세상 가장 밑바닥에서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승리한 김종서 박사의 이야기를 읽어보십시오.

다음의 글들은 김종서 박사의 연구서인 《기본소득과 국민기업경제》 후미에 “집필을 마치며”라는 제목으로  김종서 박사 스스로 쓴 자전적 이야기를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여기서 ‘필자’는 ‘김종서 박사가 자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7.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날려 버린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될 기회

 

   대학교 재학 중에 5명을 뽑는 행정고시 재경직(경제기획원ㆍ재무부 근무직)에 합격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고시 공부를 하였지만, 부부 생활하랴, 구멍가게 운영하랴, 도매 시장에서 야채 떼어 오랴, 애 보랴, 어려운 경제 사정에 대해 고민하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걱정하랴, 고시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필자는 궁핍한 경제 사정으로 대학을 한 학기 휴학하고, 30세가 되던 여름 학기에 졸업하였다. 돈이 없으니 고시 공부를 계속할 수 없었다. ‘입사 제한 연령’인 28세를 넘어선 나이였지만 혹시나 하고 공기업, 공공기관, 대기업에 100통도 넘는 입사서류를 보냈다. 그러나 단 한 곳도 시험 보러 오라고 연락해주는 곳이 없었다. 필자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은 대학교 진학률이 몇 %도 되지 않았다. 때문에 당시 고향 사람들은 대학을 졸업하면 출세가 보장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명색이 대학을 졸업했다는 자가 취업을 하지 못하고 지내는 것이 부끄럽고 창피하고 자존심 상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당시는 대기업 취업하여 교육을 받은 후 영업직에 발령이 나면 즉각 사표를 낼 정도로 영업직을 기피하던 시대였다. 그러나 필자는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고등학교 졸업자도 받아 주는 중소기업의 영업직에 취업을 하였다. 30세 때인 1984년 10월에 취업하고, 34세 때인 1988년 2월에 퇴사하였다. 역사 연구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창업을 위해서였다.


   전통 금속(유기) 제조ㆍ판매 사업을 시작하였고, 수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필자가 직접 영업 일선에 나서지 않은 결과였다. 필자가 대학에 다닐 때, 사업자금이 모이면 참기름, 고추장ㆍ된장ㆍ간장, 구이김 등을 아이템으로 한 식품 사업을 하기로 마음 먹었었다. 사업자금이 없으니 우선 조그마한 참기름 공장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또다시 실패했다. 이때도 직접 영업 일선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을 굶길 수도 없었고, 인생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창피했지만 신사용 자전거에 참기름과 깨소금을 조금 싣고 슈퍼마켓, 식품점 등에 공급하였다. 당시는 가짜 참기름이 판을 치던 시절이었다. 필자가 대학 때부터 참기름을 사업 품목으로 정한 이유는 소비자들의 참기름에 대한 깊은 불신 때문이었다. 1년에 몇 번씩 가짜 참기름 생산자들이 체포되는 기사가 방송 신문을 장식했고, 진짜 100% 참기름을 파는 참기름집도 많지 않았다. 품질 좋은 진짜 참기름을 만들면 소비자들의 신뢰를 받아서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사업은 날로 번창하였고, 멸치액젓, 새우젓, 구이김, 양념장, 고추장, 된장, 간장, 미역, 당면, 국수, 안주, 콩나물, 두부 등으로 품목을 계속 늘려나갔고 각 품목마다 시장점유율을 높여 나갔다. 필자 회사의 제품이 입점한 슈퍼마켓에서는 각 품목마다 판매 점유율이 대략 3 ~ 4위

안에 들었다. 참기름의 경우 이마트, 프라이스클럽에서 취급하는 수만 가지 품목 중에서 10위 안에 드는 제품으로 성장하였다. 할인 매장을 운영하는 유통회사가 생기면 반드시 먼저 거래를 하자는 요청이 왔다.


   1992년 당시에 약 200명이었던 영업 사원을 1995년까지 3,000명으로 늘리는 것이 1차 목표였다. 식품회사로 영업 사원 3,000명이면 한국내 최고의 식품 회사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필자의 2차 목표는 10년 안에 소비자 직거래 방식을 통해서 조그마한 이쑤시개부터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모든 상품을 필자 회사의 브랜드로 만들어 파는 것이었다. 직접 만들 수 있는 것은 직접 만들고, 직접 만들기 어려운 것은 OEM으로 생산하여 팔면 될 일이었다.


   이때는 소비자 직거래라는 영업 방식을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던 시절이었고, 아마존이 책 장사를 시작하기도 전이었다. 만약 필자가 역사 연구에 인생을 바치지 않고 ‘소비자 직거래 사업’을 추진했더라면 필자의 추진력, 인내력, 창의력, 분석력이 더해져서 이미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1994년에 기업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한국 고대사 연구에 뛰어들었다. 한국 고대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하여, 그리고 온 세상을 좀 더 공정하고 좀 더 평등하고 좀 더 경제적으로 풍부한 삶을 사는 세상으로 만들 연구서 집필을 위하여 세상과 담을 쌓고 2020년 11월 07일 현재까지도 개인 연구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밤낮을 보내고 있다.


 더 자세히 아시려면 김종서 박사의 『기본소득과 국민기업경제』『국민이 주인인 나라』『라스트혁명』 을 읽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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