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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고대사를 한반도 안의 약소국의 역사, 역사초기부터 중국의 지배를 받아온 열등한 민족의 역사로 주장하고, 

          배우고 가르쳐온 최대 근거로 4대전제를 들었는데 이 ‘4대전제’가 전혀 근거 없는 역사왜곡이라는 것을 밝혀낸 연구 내용.


          그 4대전제의 첫 번째가 ‘산융ㆍ동호의 영역이 하북성 동부로부터 요하 서쪽지역까지라는 것’이었고,

          고려ㆍ조선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학자들이 이렇게 인식하고 주장하고 인정하여 왔다는 것, 때문에

          한국 고대사 영역은 요하의 동쪽에 있었던것으로 인식되고 주장되고 교육되어 왔고, 요하 동쪽에는 1세 단군 왕검이

          건국한 고조선의 실존을 입증할 청동기문화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1세 단군 왕검의 고조선의 실존이 부정되어 왔다는 것,

          반면 요하 서쪽지역에는 이미 서기전 5,000년 전에 청동기문화가 발흥한 지역이고, 중국 황하유역보다 앞선 청동기문화가 존재한 지역이라는 것,

          때문에 산융ㆍ동호가 실재했던 영역을 최초로 연구하여 산융ㆍ동호가 실재했던 영역이 산서성 대현을 포함한 산서성 북부와

          하북성 북부 및 그 북쪽의 내몽골지역이라는 것을 밝혀낸 연구 내용. 이어서 발해 북쪽, 요하 서쪽 지역은 1세 단군이 건국한

          고조선 영역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밝혀낸 연구 내용.


          그 4대전제의 두 번째가 ‘고대 한국과 중국의 국경선이었던 고대의 요수가 현재의 요하라는 것’이었다.

          고대의 요수가 현재의 요하라는 인식에 의하여 산융ㆍ동호의 위치가 발해 북쪽 요하 서쪽에 있었다고 왜곡되는 주요 근거가 된 것이다.

          중국의 많은 역사기록들을 연구 분석한 결과 고대의 요수는 현재 산서성 북부에서 발원하여 북경ㆍ천진의 서부지역을

          서북쪽에서 남동쪽으로 흐르는 영정하라는 것, 이 요수의 동쪽에 있던 요동을 잃은 후로는 대요수가

          고대 한국과 중국의 국경이 되었는데 그 대요수가 란하의 하류 유역이라는 것을 밝혀낸 연구 내용.


          그 4대전제의 세 번째가 ‘연나라 장수 진개가 (중)조선 땅 2,000리를 빼앗았다’는 『위략』의 기록이다.

          그러나 진개는 연나라 장수도 아니고, 조선 땅 2,000리를 빼앗은 적도 없으며, 실존 인물일 가능성도 적다는 것,

          만약 진개가 실존 인물이고 동호를 1,000리 물러나게 한 것이 사실이라면 조나라 북쪽의 대代지역을 놓고 뺐고

          뺏기던 동호를 물리친 것이라는 것(본서 2권에서) 등을 밝혀낸 연구 내용.


          그 4대전제의 네 번째가 ‘(중)조선과 중국(한漢)의 국경선인 패수浿水, 위만이 한나라를 탈출하여 

          조선으로 망명하면서 건넌 패수가 청천강(압록강)’이라는 주장과 교육이다. 그러나 패수가 청천강이나 

          압록강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해줄 기록이 전혀 없다는 것, 패수는 란하 하류나 란하 하류의 지류 중의 

          하나이거나 대릉하라는 역사의 진실을 밝혀낸 연구 내용.


          『관자』와 『산해경』에 수록된 고조선의 위치가 발해의 북쪽ㆍ요하의 서쪽이라는 연구내용, 『관자』와 『산해경』은 

          역사적 사실, 역사의 진실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부귀영화도 초개같이 버리고,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중국 사관(태사)들에 의하여 

          서술된 사초를 후대에 편찬한 사서라는 것, 『관자』와 『산해경』은 위서도 아니고 후세에 만들어진 사서도 아니라는 연구 내용.

           


           

           

          중국의 태사(사관)들은 역사의 진실을 남기기 위하여 부귀영화도 버리고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투철한 직업의식을 

          가졌다는 것, 따라서 중국 태사들이 남긴 한국 관련 기록은 역사적 사실일 것이라는 것을 입증한 연구 내용.


          낙랑군과 구사국, 대마국간의 거리, 대방군과 구사국, 대마국간의 거리를 연구 분석한 결과 

          낙랑군, 대방군은 한반도에 절대로 있을 수 없고, 그 실재할 수 있는 위치는 요하 서쪽지역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

          장안과 진번군의 거리 기록으로 볼 때 낙랑군과 진번군은 한반도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한 연구 내용.


          염난수와 마자수로 볼 때, 염난수는 현재의 란하이고 현도군은 장성 유적 북쪽 란하 중류유역에 있었고, 

          열수의 길이로 볼 때 낙랑군은 한반도에 있을 수 없다는 것 등을 입증한 연구 내용.


          패수는 2개가 있는데, 한나라와 중조선ㆍ후조선의 국경선인 패수는 란하의

          하류이거나 란하의 지류이고, 낙랑군 내부를 흐르는 패수는 대릉하라는 것을 입증한 연구 내용.  


          위만의 봉지, 위만이 지키던 국경, 준왕의 탈출로, 후조선의 영토크기, 후조선의 지정학적 위치, 한나라의 

          수군과 육군 침공로 등으로 볼 때 중조선ㆍ후조선은 한반도에 존재할 수 없고, 발해의 북쪽ㆍ요하의 서쪽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입증한 연구 내용.


          고구려와 한나라의 전쟁, 모본왕과 태조왕의 중국정벌, 관구검의 침략전쟁, 마한ㆍ예ㆍ맥의 현도군 정벌, 

          부여의 낙랑군 정벌, 동천왕의 평양 천도, 중국의 인구 감소, 수나라의 고구려 침략전쟁 등에 나타난 고구려의 위치로 볼 때 

          낙랑군ㆍ현도군은 요하서쪽 지역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입증한 연구 내용.


          1권에 이어 대군 고류현의 위치, 산융ㆍ동호와 오환ㆍ선비 및 흉노의 동쪽 경계선을 찾아내어 

          예ㆍ맥ㆍ부여ㆍ조선, 연나라 실제 위치와 예ㆍ맥ㆍ부여ㆍ조선의 위치는 란하 유역으로 

          요하유역 사이에 있었다는 것을 입증한 연구 내용.


          관중이 본 고조선과 사마천이 본 조선의 위치, 험독ㆍ창려ㆍ왕험성 위치로 본 조선과 

          낙랑군의 위치, 조선현과 조선성의 위치로 본 조선과 낙랑군의 위치, 왕망의 지시로 본 낙랑ㆍ현도군의 위치, 

          부여와 고구려 영토 위치로 본 한사군의 위치는 란하 유역으로부터 요하 서쪽 사이에 있었다는 것을 입증한 연구 내용.


          만약 진개가 실존 인물이라면 진개는 연나라 장수가 아니라 조나라 장수로써 현재의 산서성 대현을 중심으로 한 지역을 

          영역으로 한 동호를 물리쳤고, 조선을 침공한 적이 없다는 것 등을 입증한 연구 내용.

           

           

           

           

          『여씨춘추』, 『사기』『진시황본기』, 『사기』『조선열전』, 『설문해자』, 『수경』등에 

          수록된 조선의 위치는 발해의 북쪽ㆍ요하의 서쪽이라는 것, 그러나 이들 사서에 수록된 조선의 위치에 대한 기록이 

          조선이 한반도에 있었던 것으로 왜곡되었다는 것을 입증한 연구 내용.


          하북성 동북부ㆍ요녕성 서부ㆍ요하 유역 및 내몽고 지역에 있던 

          예ㆍ맥ㆍ옥저ㆍ구려ㆍ부여ㆍ조선ㆍ낙랑 유민들 중에 한나라의 압박과 지배를 피하여 

          동쪽으로 이동한 이들이 각기 동예ㆍ맥ㆍ동옥저ㆍ북옥저ㆍ고구려ㆍ졸본부여ㆍ동부여ㆍ동조선ㆍ최씨낙랑국 등을 

          세웠다는 것 등을 입증한 연구 내용.


          동옥저, 동예, 맥의 서쪽에 있던 단단대령, 단단대산령은 

          한반도의 낭림산맥이 아니라 대흥안령산맥이라는 것 등을 입증한 연구 내용.


          그러나 『삼국지』를 편찬하던 진수, 『후한서』를 편찬하던 범엽이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알지 못하고, 발해 북쪽으로부터 

          요하유역에 있던 예ㆍ맥ㆍ옥저ㆍ구려ㆍ부여ㆍ조선ㆍ낙랑 등과 동예ㆍ맥ㆍ동옥저ㆍ북옥저ㆍ고구려ㆍ동부여ㆍ동조선ㆍ최씨낙랑국 등을 

          같은 나라 같은 부족으로 혼동하는 기록을 남겼다는 것을 밝혀낸 연구 내용.


          북위의 태무제(424년~452년)때 이오李敖가 사신으로 평양을 방문하였을 때까지도 

          고구려의 도읍인 평양이 조선의 고토였다거나 낙랑군 영역이었다는 인식이 없었다는 것을 밝혀낸 연구 내용.


          북위의 력도원酈道元(서기470~527년)이 『수경』에 주를 달면서 『수경』에 기록된 패수관련 기록까지 부정하면서 

          대동강을 패수로, 평양과 그 인근지역을 낙랑군이라고 왜곡한 것이 고조선과 한사군의 위치에 대한 최초의 역사 왜곡이라는 것을 밝혀낸 연구 내용.


          력도원을 이어서 당나라 태종 이세민(626~649 재위)의 둘째 아들 이태李泰(619~653)가 편찬한 지리서인 『괄지지』에, “고구려 도읍 

          평양성은 본래 한漢나라의 낙랑군 왕험성이 있던 곳이다. 또 예로부터 일러오기를 조선 땅이다.”라고 역사를 왜곡한 이후, 

          『사기정의』, 『구당서』, 『신당서』, 『구오대사』 등의 모든 중국 역사서에서 력도원과 이태의 고대 조선과 

          낙랑군 위치에 대한 왜곡을 따랐다는 것 등을 밝힌 연구 내용.


          고대도로와 현대도로를 비교하여 그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없었던 군ㆍ국ㆍ주 등의 

          실재하였던 위치를 찾아내는 방법을 창안 즉, ①한대漢代로부터 현대까지 위치 변동이 없는 

          낙양과 한단, 낙양과 소주, 낙양과 소흥, 낙양과 광주, 낙양과 합포 간의 도로가 고대(한대)에는 몇 리(km)였고, ②그 구간들이 

          현대의 고속도로ㆍ국도 건설로 얼마나 평탄화ㆍ직선화되었는지 그 수치(한대 도로의 도로 단축율)를 구한 후, ③이들 구간의 도로 단축율을 

          표본 단축율로, 실재했던 위치를 알기 원하는 군ㆍ국과 낙양 간의 거리를 나누어서 그 군ㆍ국의 위치를 추정하는 방법으로④낙양의 동북지역에 있던 

          군ㆍ국인 조국ㆍ중산국ㆍ탁군ㆍ 광양군ㆍ어양군ㆍ우북평군ㆍ요서군ㆍ요동속국ㆍ요동군ㆍ현도군ㆍ낙랑군ㆍ임둔군ㆍ진번군ㆍ대군ㆍ상곡군 등이 

          실재했던 위치를 찾아냈고, ⑤그 결과 이들 군국들이 실재했던 위치보다 적게는 700여리에서 많게는 수천리 이상 

          동북지역 먼 곳에 있었던 것으로 왜곡되어 왔다는 것을 밝혀낸 연구 내용.

           

           

           

           

          고대 중국과 한국의 위치를 찾을 때 아주 중요한 기준이 되는 중국의 동해ㆍ해내ㆍ해외ㆍ북해에 대한 명확한 위치 연구로 

          더이상 중국 ‘동해의 안쪽(해내)’에 있던 조선ㆍ북해의 모퉁이에 있던 조선을, ‘요동반도, 한반도’에 있었다고 왜곡하면서 ‘요동반도와 

          한반도’도 ‘중국 동해의 안쪽(해내)’에 포함된다고 더 이상 주장할 수 없도록 하였다는 연구 내용.


          본서 1권에서 본 요수와 패수의 위치, 본서 2권에서 본 고대 조선과 한사군의 위치, 

          본서 3권 『여씨춘추』,『사기』『진시황 본기』,『사기』『조선열전』,『설문해자』,『수경』에서 본 고대 조선의 위치 및 

          요수에 이어서 『산해경』과 『수경』의 요수는 영정하이고, 대요수는 란하이고, 연나라 영역은 영정하 남쪽이었고, 고대 조선은 

          요동반도와 한반도의 서쪽 지역 즉,  중국의 동해(한중해와 발해) 안쪽과 발해(북해)의 북쪽 지역인 북경ㆍ천진으로부터 요하의 서쪽 지역을 중심지역으로 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밝혀낸 연구 내용.


          『산해경』이 고대의 위치를 정확히 기록한 중국 최고의 지리서라는 것을 입증한 연구 내용.


          지도상의 단순거리 비교로 그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없었던 지역의 실재하였던 위치를 찾아내는 

          방법을 창안 즉, 「①한 대漢代로 부터 현대까지 위치 변동이 없는 낙양과 조국, 낙양과 오군, 낙양과 회계군, 낙양과 남해군, 

          낙양과 합포군 간을 지도상에서 몇 cm로 표시되는 지, 그 수치를 구한 후, ②각 1cm(혹은 1mm 등)가 몇 리(km)를 표시하는지 그 값을 

          구하고, ③그 표본지역간을 이은 각 1cm의 값으로 낙양과 위치를 알고자 하는 ‘지역(예컨대 B)’ 간의 거리를 나누어서 산출된 길이를, ④지도상의 

          낙양으로부터 그 지역이 있던 방향으로 그려서 닿는 지역이나 그 인근지역에 그 지역이 있었던 것을 추정하는 방법을 창안하여」  ⑤ 낙양의 동북지역에 있던 군ㆍ국인 조국ㆍ중산국ㆍ탁군ㆍ광양군ㆍ어양군ㆍ우북평군ㆍ요서군ㆍ요동속국ㆍ요동군ㆍ현도군ㆍ낙랑군ㆍ임둔군ㆍ진번군ㆍ대군ㆍ상곡군 등이 

          실재했던 위치를 찾아냈고, ⑥그 결과 이들 군ㆍ국들이 실재했던 위치보다 적게는 700여리에서 많게는 수천리 이상 

          동북지역 먼 곳에 있었던 것으로 왜곡되어 왔다는 것 등을 밝혀낸 연구 내용.


          이러한 위치 왜곡, 역사왜곡의 결과 요하 서쪽에 있던 고대 조선과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던 것으로 

          왜곡되어 온 것은 물론 건국초기에 요하의 서쪽까지를 영역으로 하였던 고구려를 수백년간 압록강 유역의 작은 나라로 왜곡하여 왔고, 

          서기 300년경 부터 란하 유역까지를 영역으로 한 대제국 고구려를 요하 동쪽의 작은 나라로 왜곡하여 왔으며, 200년간 중국의 동부지역을 

          영역으로 하였던 백제의 역사도 부정되어 왔다는 것 등을 밝혀낸 연구 내용.

           

           

           

           

          중국, 대만, 일본, 미국, 한국 등 세계의 역사지도들을 분석한 결과, 

          ①요하 서쪽에 있던 고대의 조선, 낙랑군, 임둔군, 진번군, 현도군이 한반도에 있었던 것으로 왜곡됨으로써, 

          ②천진ㆍ북경ㆍ당산 지역을 영역으로 한 요서군, 동서 길이 300리에 불과했던 요서군 영역을 최소 2,100리에서 

          최대 2,860여리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을 가진 군으로 왜곡하여왔고, ③하북성 당산으로부터 산해관까지 동서 길이 400리에 불과한 

          요동군 영역을 최소 1,790여리에서 최대 2,400여리의 광대한 영역을 가진(요녕성 북진시로부터 한국의 청천강 하구까지를 영역으로 한) 

          군으로 왜곡하여 왔으며, ④천진 남부ㆍ당산 남부ㆍ창려 지역에 있었던 요동속국을 1,200여리 동쪽 지역인 요녕성 금주와 그 인근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왜곡하여 왔고, ⑤한사군과 요동ㆍ요서ㆍ요동속국의 위치를 실재했던 위치보다 2~3,000리 더 동쪽에 있었던 것으로 

          왜곡하자, 필연적으로 같은 유주에 속했던 ⓐ우북평군, ⓑ어양군, ⓒ광릉군, ⓓ탁군 등의 위치 또한 실재했던 위치보다 

          동북쪽 먼 곳에 있었던 것으로 왜곡되었다는 것을 밝혀낸 연구 내용.


          ⑥때문에 낙양 동북쪽 2,500리 거리에 있던 하간국의 북쪽 멀리에 낙양에서 

          2,300리 떨어진 우북평군을 배치하고, ⑦낙양 동북쪽 2,500리 거리에 있던 하간국의 북쪽에 

          ⓐ낙양에서 1,800리 거리에 있는 탁군, ⓑ낙양에서 2,000리 거리에 있는 광양군, ⓒ낙양에서 2,000리 거리에 있는 

          어양군이 있었다고 역사를 왜곡하여 왔고, ⑧낙양 동북쪽 2,000리에 있던 안평국의 북쪽 멀리에 ⓐ낙양에서 1,800리 거리에 있는 

          탁군, ⓑ낙양에서 2,000리 거리에 있는 광양군, ⓒ낙양에서 2,000리 거리에 있는 어양군이 있었다고 

          역사를 왜곡하여 왔다는 것도 밝혀낸 연구 내용.


          이어서 지도상에서 수평직선거리와 도로굴곡지수를 적용하여 실재했던 위치를 찾는 방법 즉, 

          ①위치변동이 없는 ‘기본 지역 (A)’과 위치 변동이 없고 ‘기본 지역(A)’과의 거리가 알려져 있는 ‘지역(B)’을 

          표본으로 정하고, ②지도상에서 두 표본지역 A, B 간의 거리를 측정한 후, ③그 A, B 간의 거리로 실재했던 위치를 찾고자 하는 

          지역(C)과 ‘기본 지역(A)’ 간의 거리를 나누어서 산출된 지도상의 거리를, ④기본 지역(A)에서 그 지역(C)이 있었다고 알려져 온 방향으로 

          그려서 닿는 지역이나 그 인근지역에 그 지역(C)이 있었던 것을 추정하는 방법으로, ⑤낙양의 동북지역에 있던 

          군ㆍ국인 중산국ㆍ탁군ㆍ광양군ㆍ어양군ㆍ우북평군ㆍ요서군 등이 실재했던 위치를 찾아냈고, 

          ⑥그 결과 이들 군국들이 실재했던 위치보다 적게는 700여리에서 많게는 수천리 이상 

          동북지역 먼 곳에 있었던 것으로 왜곡되어 왔다는 것 등을 밝혀낸 연구 내용.

           

           

           

          본서 5권에 이어서 지도상에서 수평직선거리와 도로굴곡지수를 적용하여 실재했던 위치를 찾는 방법으로 

          요동속국ㆍ요동군ㆍ현도군ㆍ낙랑군ㆍ임둔군ㆍ진번군ㆍ대군의 실재했던 위치를 찾는 과정과 실재 위치를 찾아낸 연구 내용.


          그동안 상곡군이 있었다고 알려져 온 위치의 북쪽 끝은 만리장성 유적이기 때문에 위치에 대한 왜곡이 가장 적었고, 조국의 치소인 

          한단은 위치변동이 없는 고도이다. 때문에 수평직선거리와 도로굴곡지수로 고증한 상곡군과 조국의 위치와 기존에 알려져 온 상곡군과 

          조국의 위치와 일치한다는 것, 이는 이 수평직선거리와 도로굴곡지수를 사용하여 위치를 고증하는 방법의 정확성을 입증하여 준다는 연구 내용.


          본서 3권, 4권, 5권, 6권, 7권에 이르기까지 수학적 위치고증을 하는데 기본이 되는 

          『후한서』『군국지』의 낙양에서 각 군ㆍ국까지의 거리 기록과 『구당서』『지리지』의 

          장안과 낙양에서 각 주까지의 거리 기록이 자로 정확히 측정한 거리이냐, 아니면 대략 몇 리가 된다고 말한 거리이냐가 

          중요하고, 한대의 1리의 길이와 당대의 1리의 길이가 몇 km(m)인지가 중요하다. 때문에 고대 중국의 국토조사, 거리 단위 등에 대한 

          중국의 역사기록과 유물ㆍ유적 등을 철저히 연구 분석하여, 중국은 고대부터 국가에서 ‘표본 자(도度/척尺)’의 규격, 재질, 자(도)를 만드는 방법 등을 

          정하고 그 자(도)로써 정확한 거리를 측정하고, 그 거리를 기준으로 조세를 부과하고, 각 지역과 지역 그리고 각 국가와 국가 간의 거리에 대한 

          정보를 기반으로 곡물ㆍ야채ㆍ과일 등의 상품의 운송ㆍ교환ㆍ매매ㆍ수출입 등이 이루어졌으며, 군사의 이동과 식량과 무기의 운송 등이 

          이루어졌다는 역사적 사실을 밝혀낸 연구 내용. 따라서 『후한서』『군국지』에 수록된 낙양과 군ㆍ국 간의 거리 기록과 

          『구당서』『지리지』에 수록된 낙양과 각 주州 간의 거리 기록, 『무릉서』에 수록된 장안과 임둔ㆍ진번 간의 

          거리 기록은 정밀한 자로 거리를 정확히 측정한 것이라는 것을 입증한 연구 내용.


          또한 평양을 중심으로 한강 이북지역이 한사군, 낙랑군, 낙랑군ㆍ대방군 영역이었다는 것을 

          증명할 결정적 증거로 받아들이고 있는 정백동 634호 나무곽무덤(목곽묘)에서 출토되었다고 하는

           ‘낙랑군 호구부 목간’이 조작된 유물이라는 것을 객관적, 논리적, 실증적으로 밝혀낸 연구 내용.

                           

           

           

          평양이 낙랑군 치소였다는 증거로 제시되어 온 낙랑봉니 221개가 모두 조작된 가짜라는 것, 

          점제현신사비 또한 조작된 가짜, 일본인들이 다른 곳에서 만들어서 옮겨다 놓은 가짜라는 것을 밝혀낸 연구 내용.


          평양과 그 인근 지역에서 발굴되었다는 각종 옥인, 은인, 동인 등의 각종 인장(도장), 글자가 새겨진 와당 등이 조작된 것이거나 

          평양ㆍ평안도와 그 인근지역이 낙랑군, 임둔군, 진번군, 대방군 등과 관계가 없는 독립적인 정치세력, 독립적인 국가가 실존하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유물이라는 것을 밝혀낸 연구 내용.


          평양 지역에 낙랑군이 아니라 최리의 낙랑국, 부조국이 있었다는 연구 내용.

           

           

           

          평양 지역이 낙랑군 치소임을 입증하는 증거로 제시되어 석암리 9호분(무덤), 석암리 219호분 등에서 

          출토된 금으로 만든 교구鉸具(대구/버클) 등의 교구, 마면馬面, 드리개장식, 마차(수레), 옥기, 청동기 등의 유물은 

          평양ㆍ평안도와 그 인근지역이 낙랑군, 임둔군, 진번군, 대방군 등과 관계가 없는 독립적인 정치세력, 독립적인 국가가 

          실존하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유물이라는 것을 밝혀낸 연구 내용. 또한 이 유물들은 낙랑ㆍ대방군이 한반도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유물이라는 연구 내용.


          평양ㆍ평안도와 그 인근 지역에서 발굴되었다는 글자가 새겨진 벽돌들은 조작된 것이거나 평양과 

          그 인근지역이 낙랑군, 임둔군, 진번군, 대방군 등과 관계가 없는 독립적인 정치세력, 독립적인 국가가 실존하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유물이라는 것, 또한 이 벽돌들은 낙랑ㆍ대방군이 한반도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유물이라는 연구 내용.


          석암리 9호분(무덤), 석암리 219호분 등의 주인(피장자)은 낙랑군의 관리나 

          낙랑군민樂浪郡民의 무덤이 아니라 한漢나라로부터 독립적인 국가의 왕王 무덤이라는 것, 그 나라는 

          최리의 낙랑국이거나 부조국일 것 이라는 연구 내용.


          세계 모든 나라에서 만리장성의 동쪽 끝을 한국의 청천강 하구나 압록강 하구까지 이른 것으로 

          표시하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굴곡지수와 수평직선거리로 고증하고, 유물ㆍ유적, 역사적 사실 등으로 고증한 만리장성의 동쪽 끝은 

          하북성 산해관을 넘을 수 없다는 것. 만리장성의 동단을 요양遼陽, 압록강鴨綠江, 청천강淸川江 등으로 주장해 온 현재까지의 학설은 

          역사기록, 유물ㆍ유적을 왜곡한 주장이라는 것, 만리장성의 동단東端(동쪽 끝)인 고대의 갈석산碣石山은 오늘날의 

          갈석산碣石山ㆍ조산祖山ㆍ장수산長壽山이고, 갈석산 중에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갈석산 부분은 

          산해관 북부에 있는 장수산長壽山이라는 것 등을 밝혀낸 연구 내용.


          전국시대 2,000리 영토의 연나라 말기의 위치는 갈석산(산해관) 서쪽에 한정 되었다는 것 등을 밝혀낸 연구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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